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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인간] 현대 행동경제학을 통해서 본 인간에 대한 새로운관점

우와우앙 2018.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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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수) 저녁 7시 불기도서관에 ' 현대 행동경제학'을 통해서 본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대한 강의를 청강하기 위해 갔다.

 

최정규 교슈님은 행동경제학분야에 권위있는 교수로 이타심이라는 인류보편적인 감정이 어떤식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 있다.

 

세부 주제는 "우리가 아직도 이타주의를 이야기해야하는 이유" 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행동경제학을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이타주의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한다고 말을 시작했다.

 

 실험 1

나에게 100만원이 갑자기 생긴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는 자연스럽게 50만원은 가방, 지갑, 책 등을 사고 50만원은 펀드에 넣을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맨첫번째 앉으신 분이 강정에 기부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위해쓰는 것의 크기를 m이라고 두고

내가 남을 위해쓰는 것의 크기를 y라고 뒀을 때

 

m과 y의 가치가 큰 것에 돈을 쓸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여기서, y의 가치가 y>0 이냐 y=0 이냐에 따라 좀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y=0의 의미인 즉 남을 도왔을 때의 가치가 없다라는 뜻이다.

 

실험 2

 

그럼

컴퓨터로 무작위하게 2인1조로 짝지어진 후 각각 1만원찍 준다.

이 중 일부를 짝에게 줄 수 있는데 짝은 받을 때 3배로 받게 된다.

상대방도 당신에게 줄 수 있으며 받을 때 3배를 받게 된다.

이때 짝이 누군지 알 수 없으며, 논의도 할 수 없다.

 

얼마를 줄 것인가?

 

처음 나는 7천원을 생각했따가 6천원으로 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1만원인데 내가 6천원을 주면 남은돈 4천원, 상대방이 양심상 2천원~3천원은 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만원을 맞췄었다.

 

앞에서 말한  y=0 이였다면 0원을 줬을 것이다.

실험을 해보면 보통 5:5 정도라고 한다.

> 이 설험의 이유는 내가 남을 도와줬을 때 사회에 충분히 기여한다.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1만큼을 도와줬는데 상대방은 3만큼 돌아가기 때문..

 

 실험 3

 2인 1조가 있다 . p역할자, r역할자 2명이 있따.

p역할자는 만원을 받았고 r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 상대방에게 한푼도 안줘도 되고 전부 줘도 된다. 그러나 상대방이 거절할 경우 둘다 한푼도 받지 못한다.

r역할자는 p역할자가 배분해 준돈을 보고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선택한다. 거절시 p와 r모두 한푼도 가져가지 못한다.

 

3-1 내가 p라면 얼마를 줄 것인가. 

3-2 내가 r라면 얼마를 받을 때 거절할 것인가.

 

나는 3-1에는 6:4, 3-2에는 7:3정도 생각했다.

 

r입장에서는 어쨎든 수익이 생기는 거지만 p와 비교했을때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불공정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비용을 지불해서라도(수익이 없어진다) 분노를 표출한다.

 

 

그럼 여기서 남을 도와주는 행위를 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 이타심일 수도 상호성일 수도 있다.

 

1. 이타심 , 타인의 이득이 가지만, 행위자 자신에게는 희생이 따르는 속성이다.

2. 상호성, 자신에게 이득을 준 상대에게는 호의로 대하려는 성향이다.

 

진화론과 경제학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합리적(경제학에서 이타심이 0 = 이기적인 사람)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합리적인 사람과 실험1,2,3을 하게 되면 결국 합리적인 사람이 모든 것을 같게 된다. 그럼 결국 합리적인 사람은 성장, 자손을 남기고 이타적인 사람은 도태, 자손을 남지기 못하게 된다.

그럼 진화론의 말처럼 결국 세상은 합리적인 사람만이 자손을 남기게 되는데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럼 어떻게 이타적인 사람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관련한 가설

1. 혈연선택가설

2. 간접상호성가설

3. 직접상호성가설

4. 집단선택가설

 

떄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왜 우리는 이타적인 인간을 계속 논해야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완전한 계약, 불완전한 계약에서 생각 해 볼 수 있다.

 

계약을 하더라도 완전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부분은 서로간의 이타적인면과 상호적인 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을 예로 들면,

노동시간은 계약으로 명시할 수 있으나 노동의 강도 (1시간에 얼마만큼의 일을 했는가)등은 표현할 수도 명시할 수도 없다.

고용자는 노동력을 더 많이 추출코자 할 것이고 노동자는 저항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갈등이 발생할 수도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계약에 포괄되지 않는 상호작용의 측명들은 작업장, 거주지, 시장의 모든거래를 조정하지 못하는 곳에서 언제나 존재하고, 계약이 완전하지 않은 곳에서 사회적 선호는 계속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느낀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 수준을 좀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수험생처럼 공부만 할 줄 알았지 그전에 배웠던 과정이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지식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지혜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존의 진화론이 경제학등의 학문에 끼친 영향과 멘델린의 꿀벌의 우화도 읽고 싶어졌다.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세상을 온 기분이였다. 나는 정말 작은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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