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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삶이란 무엇인가?

우와우앙 202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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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레프 톨스토이 , 제목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출판사 : 열린책들 출간연도 :2018 페이지 : 232p

 

삶이란 무엇인가?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읽기전, 


1. 이 책을 읽게된 동기

 저는 제주 울림나비 독서모임의 책으로 이반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책이 선정된 것을 보았을 때,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인 톨스토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를 꼭 읽겠다고 다짐하고 책을 구매한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 1권도 채 읽지 못한 상태였고, 그 중 기억나는 문구도 첫 소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무지함을 돌아보며 이번에는 기필코 톨스토이가 책으로 말하고싶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어떻게 세상의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해젔습니다. 

 

2. 저자소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자입니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이며, 대표작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부활 등이 있습니다. 항상 일기를 쓰면서 자기반성을 하는 작가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고자 하는 작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여성편력, 귀족삶 고집, 도박 등의 위선과 거짓의 삶을 살았습니다. 

  

읽고나서,


3. 줄거리 

 판사 이반 일리치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불치병을 앓게 됩니다. 그는 고통속에서 죽어가면서 자신에게 무관심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화가납니다. 제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삶이 잘 못 살아왔던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부와 명예들이 무의미한 기쁨이었음을 알게됩니다. 죽음 앞에 진심으로 병수발해주는 하인을 만나면서 죽음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직전 어린 아들이 울면서 그의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자신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기회가 찾아왔다고 깨닫습니다.  그는 스스로 용서를 구하며 죽음을 받아들이자, 고통이 사라지고 비로소 죽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자신은 다 제대로 했는데 어떻게 잘못 살았을 수가 있어?

 

4. 문구

(40)이반 일리치가 알고 싶은 것 단 한가지, 자신의 병이 위중한지 아닌지였다. 그러나 의사는 그런 부적절한 질문은 무시했다. 

(46)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20)

그는 그렇게 파멸의 벼랑 끝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고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

(50) <이건 맹장 문제도 아니고 신장 문제도 아니야. 이건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자꾸만 도망가고 있어. 나는 그걸 붙잡아 둘 수 없어. 그래. 뭣하러 나를 속여? 나만 빼고 모두들 내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 남은 시간이 몇 주냐, 며칠이냐, 그것만이 문제야. 어쩌면 지금 당장일 수도 있어. 빛이 있었지만 이제 캄캄한 어둠뿐이야. 나도 여기있었지만, 곧 그리로 가겠지! 그런데 그게 어디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숨이 멎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소리만 들렸다.

(50)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아무것도 없다는 건가? 내가 없어진다면 나는 어디에 있게 되는거지? 정말 죽는건가? 안돼!, 싫어>

(54)그는 죽음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 주던 지난날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감싸 주고 지켜 주던 예전의 모든 생각들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61)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 좀 못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해 고생 좀 하는 것이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으며, 그 또한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수고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84) 그는 <용서해줘>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가게 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쳐 말할 힘조차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겠지.

(85)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5. 내생각

 죽음이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죽음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는 어려서 죽음이란 것은 통제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초등학생 시절에는 200살까지 살 수 있을꺼라고 말했고, 25살때는 50살까지 살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는 기술이 좋아져서 모든사람들의 평균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그 시절 나에게 기하급수적 단어가 200살쯤 됐던 것 같다.

25살 때에는 지금 산만큼만 더 살아도 충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0살까지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살까지 살수 있지만 50살까지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순수하고 오만하게 죽음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식습관관리도 하고 수면도 챙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전제가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행복에만 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죽음은 지금 당장 나의 것도 아니고 나에게 닥치지 않기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통제되는 것 처럼 느낄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보았던 장례식들을 떠올렸다. 가까운 가족부터시작해서 직장, 과선배 등의 외가댁의 장례식들까지 고루 떠올렸다. 살아생전 잘 살았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사람이 많은 것이고 조의금도 그래서 차이가 큰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살아생전 잘 살았던 사람들만을 위한 장소였던 적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살아생전 그 분이 이룬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것을 못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그런 분위기의 장례식이 몇군데나 있었던가.. 내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절관에서 편지를 읽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쓴 편지를 내가 낭독했지만.. 도무지 그 편지에 뭐라고 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슬퍼만 했다. 아버지의 삶에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룬 모든 것들, 이루지 못한 것들, 아버지의 생각만으로도 벅찼어야 했는데 나 또한 그때 그렇지 못했다.

 

요즘은 모든 것이 편해졌다. 기술 발전아래 우리는 뭐든 쉽게쉽게 한다. 그리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점점 사람들과의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판사는 법조례만으로 사람을 벌하고, 약사는 처방전에만 따라서 약을 주고, 의사는 치료법에만 의해서 치료한다. 사회가 왜 이 사람이 죄를 짓게 했는지, 왜 이사람이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는지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 할 수록 사람이 공감하여 실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판사,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 먼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공감이 곧 실수가 되는 직종들 말이다. 

 

우리는 저런 시대를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타인을 공감하는 일에 더욱 무뎌지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의 모두 평등할 수 있다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도 점점 죽음에 무뎌지고 공감이 실수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뭐든지 효율성과 효과성만 바라는 곳에서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싶다.  

 

주제 : 목적과 수단의 바뀐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죽음 앞에서 무의미한 기쁨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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